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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시즌 전이다. 내가 갓 만렙을 단 지 얼마 안 돼서 랭겜을 돌리며 살 때다. 배치고사 하는 김에, 듀오 상대를 구하기 위해 롤갤에서 일단 로긴을 해야 했다. 롤갤 한켠에 아프리카 방송광고를 올리며 랭겜을 돌리고 있는 노인이 있었다. 랭겜 실력이나 구경 하고 가려고 잘 해 보라고 부탁을 했다. 화질을 굉장히 높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저화질로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방송 화질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인터넷이 SK거든 다른 방송 보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화질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게임이나 잘 해 보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랭겜을 돌리며 연패를 하고 있었다. 첫 게임은 20분 서렌을 치는 것 같더니, 날이 저물도록 이리 지고 저리 지고 망하기 시작하더니, 마냥 연패질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많이 졌는데, 자꾸만 더 하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노말이나 하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자야 할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지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자러 가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질 만큼 져야 멘탈이 깎이지, 닷지하고 트롤링한다고 멘탈붕괴가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보는 사람조차 비참해서 못 보겠다는데 무얼 더 지겠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잘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방송 보시오. 난 방종 안 하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보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이 인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멘탈을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더 퍼킹 트롤을 만난다니까. 게임이란 편하게 즐겨야지, 멘탈을 깎다가 정신줄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멘탈을 숫제 심해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AD로 미드솔을 외치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방관자가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멘탈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붕괴되기는 아까부터 다 붕괴해 있던 멘탈이다. 잘 때를 놓치고 새벽에 자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방송을 해 가지고 방송이 될 턱이 없다. 시청자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해상도만 더럽게 높다. 상도덕(商道德)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방송리스트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디피트 로고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해탈한듯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집에 와서 멘탈을 내놨더니 아내는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배가 너무 부르면 게임을 이기다가 뒤집히기를 잘 하고 같은 승리라도 힘이 들며, 배가 너무 안 부르면 말투가 펴지지 않고 트롤링에 말려들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멘탈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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